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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공부/조선 (1392~1919)

[조선시대 역사] 4대 세종/ 5대 문종/ 6대 단종 - 핵심 정리

by 궁그미~ 2022.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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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 세종(재위기간 : 1418~1450, 31년 7개월) / 이도(~53세)

세종대왕 표준영정 (소장 :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 유형 : 회화)


- 태종 재위기간 중 4번의 선위파동으로 민무구 형제의 권력 팽창을 견제하고, 외삼촌과 친밀한 양녕대군을 세자 폐출시킴. 국가안정을 이루기 위한 의도.
- 충녕이 양녕 대신 왕세자에 책봉되고 두 달 후 즉위 / 태종이 이룩해놓은 왕권 안정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기틀을 확립.
- 1422년 태종이 죽은 다음부터 놀라운 정치력을 보임(개국공신 세력이 거의 사라진 시기) / 과거를 통해 정계에 진출한 유학자와 유학적 소양을 지닌 국왕이 만나 왕도정치를 실현.
- 1436년(세종18년) 육조직계제를 의정부서사제로 변혁하고 유연한 정치 시행.(당뇨병 앓던 세종의 건강문제)
집현전 기능 대폭 확대 : 학문적 사업, 인재 양성, 새로운 문화의 정착 / 정인지, 정초, 정흠지, 김담, 이순지
훈민정음 체계 완성 : 철저히 비밀리에 세종이 거의 홀로 만든 것(<->사대와 선비의 학문적 권위), 창제 작업은 세자에게 서무 결재권을 넘겨준 1436년 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임, 백성들이 의사를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 이두의 불편함과 한계성(적어도 기본적인 한자를 알아야만 읽을 수 있어서 백성들에게 용이하지 않았음), 세종이 훈민정음이 완성되자 기습적 공표를 하고 세계 언어학사에 일획을 긋는 혁명적 사건이 됨.

 

훈민정음 (국보 제 70호)
출처 : 위키백과


실용, 역사, 법률, 지리, 문학, 유교, 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획기적 성과
- 명재상 황희(분명, 강직, 정확한 성격)와 맹사성(어질고 섬세, 부드러운 성격)의 중용적 보필로 세종대를 성종시대와 더불어 조선 역사상 가장 영화롭고 안락한 시대로 만드는 원동력이 됨.

 

황희 (1363~1452 / ~88세)

 

과학혁명 
 : 서운관(천문학 연구 기관)을 설치하여 석축간의대(천문 관측대), 혼천의(천체관측기계),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와 옥루(물시계, 일종의 자명종), 측우기 제작. 민생에 도움 / 장영실

앙부일구 (보물 제845호)
자격루 (국보 제228호)
장영실 동상 (천안아산역 소재)

 

농학, 인쇄술, 화기 제작, 의학, 아악 분야에서도 과학적인 변혁 시도 
 : 박연(조선 최고의 음악 이론가, 음악 치계 정리하여 음악적 부흥 이룸, 민족음악의 기틀 다짐)
 : 정초(농사직설_실용농학서, 중농주의 실학의 선구자), 정초와 정인지(칠정산_태양과 행성의 운행을 다룬 천체력, 장영실의 천체 연구의 힘이 됨) 

국토의 개척과 확장 : 김종서(육진 개척, 두만강과 압록강 이남을 조선의 영토로 편입하고 두만강을 국경으로 확정, 여진족 진압), 이종무(대마도 정벌로 왜구 진압)
- 조선통보 주조 


 


* 5대 문종(재위기간 : 1450~1452) / 이향(~38세)


세종의 장남, 세종 3년에 8세의 나이에 왕세자 책봉(29년동안 왕세자), 세종 후반기 8년동안 세종 대신 섭정하여 거의 치세함(세종 후반기 정치 치적은 세자 향의 업적). 
- 세종이 병상에 누운 1436년, 향의 나이 23세 때 서무 결재권 넘겨 받음 / 세자의 섭정에 필요한 첨사원 설치
- 병약, 건강 악화로 이른 죽음. 학문 좋아함. 지나치게 착하고 어진 성격 / 다른 왕자들의 세력이 커지며 문종 집권기 내내 종친과 언관들 사이의 긴장된 분위기
- 관대한 정책을 기본 통치로 삼아 언관과 언론의 영향력 커짐(척불언론)
역사와 병법을 정리해 유연함과 강함을 곁들인 정책을 실시. (고려사, 고려사절요_조선 정치,제도,문화의 정리)



* 6대 단종(재위기간 : 1452~1455) / 이홍위(~16세)

단종의 초상화 @영모전


- 단종과 세자빈 권씨 모두 몸이 약해 홍위를 나은지 3일만에 죽어 서조모(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 손에서 자람
- 세종 30년에 세손에 책봉(홍위 8세), 세종이 홍위를 무척 아껴 집현전 소장학자들에게 세손의 앞날을 부탁
- 12세 문종 병사하여 왕위 오름. 대왕대비, 대비, 왕비도 없는 상황에 후궁들이 내사를 돕는 정도에 그침.
- 단종은 어려서부터 명석했으나, 너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고명대신들인 황보인, 김종서에게 정치권력 집중 (의정부의 권력 남용)
- 신권이 강화되어 세종의 아들들 세력이 팽창하기 시작. 피바람.
계유정난(1453): 세종의 차남 수양대군(세조)이 한명회, 권람의 계책에 따라 김종서, 황보인 죽이고 왕권,신권 장악 / 비윤리적인 역모 + 이징옥의 난(수양을 치기로 했으나 무위로 끝남)
- 수양대군에게 위험을 느낀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남. 이후 세조 즉위 4개월만에 단종 복위운동(사육신, 세종의 6남 금성대군 처형) / 단종 유배되며 노산군으로 강봉, 서인 강봉, 17세 나이로 사사됨.

 

 


 

참고서적 :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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