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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공부/조선 (1392~1919)

[조선시대 역사] 14대 선조/ 15대 광해군 - 핵심 정리

by 궁그미~ 202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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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대 선조(1567~1608, 40년 8개월) / 이연(~56세)

 

선조 어진 전립본으로 알려져 있는 초상화이지만, 추정 근거가 부족하며 사실 여부는 불확실.

 

선조의 서예 유묵


- 명종을 이은 적손이 없어 중종의 서손인 하성군(아버지: 덕흥대원군)이 16세에 왕위 이어받음(방계 승통 시대 시작) : 외척 중심의 척신 정치가 사라지고 붕당정치 시대 도래(사림 세력 중용)
- 성리학적 왕도정치의 신봉자. 사림 명사들을 대거 등용(이황, 이이를 나라의 스승으로 극진히 대우)
- 현량과 다시 실시. 조광조 등 신원함 -> 짧은 조정의 평화 -> 동인, 서인의 당파 싸움 (학맥, 사상적 차이)
 : 동인(주리철학, 조식과 이황의 제자들, 영남학파) vs. 서인(주기철학, 이이와 성혼 추종, 기호학파)
 : 이이가 중재하고자 했으나 실마리 못찾고 죽음. 1591년 세자 책봉 문제로 서인 실각, 동인 득세
 : 동인 분파. 북인(과격파) vs. 남인(온건파) -> 분당 사태로 조정 불안정, 국력 쇠약, 변방 야인들의 노략질(임진왜란)
 : 북인 분파. 대북(광해군 대에 골북, 육북, 중북으로 분파) vs. 소북 / 선조 말기는 북인의 세상
- 임진왜란을 막지 못해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왕으로 인식되나, 임진왜란의 근본 원인은 중국 대륙 진출을 명분으로 한 조선 침략이 목적이었던 일본의 국내 상황에서 찾는 것이 옳다고 판단 됨.
- 명종대 혼란 수습, 외척 정치 없앰, 신권 중심 정치 구현한 뛰어난 왕이었음 [당파중심 신권정치는 근대 정치 형태인 의회정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됨)
임진왜란(1592~1598) : 2차(1차 임진왜란, 2차 정유재란)에 걸쳐 왜국이 조선을 침범한 사건을 포괄적으로 임진왜란이라 함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라를 하나로 통일한 시점에 신흥세력의 힘을 축소시키고 전쟁 수행 능력을 효과적으로 소비하기 위한 전략에서 침범 / 조선 양반 계층은 붕당정치에 대한 참여만 모색하고 국방에 대해 관심이 없던 시기 /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활약으로 일본의 전라도 진출이 차단 + 전국 각지에서 의병 봉기 
명나라 원군 / 정유재란에서 도요토미가 병으로 죽고 철군, 패퇴
 : 문화재 소실(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서적, 미술품, 전자사고 외 모든 사고 소실), 민간 생활 처참 / 이후 애국심 고취, 국방에 대한 관심. 민간의 힘이 커지고 양반 중심의 정부의 힘이 약화되는 현상
 : 여진족에 의해 명이 망하고, 일본 도쿠가와 막부가 정권 장악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
- 이순신, 곽재우(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의병장), 율곡 이이(인본주의, 실학의 핵심사상으로 발전), 송강 정철(사미인곡, 속미인곡)

 

1965년 김은호가 그린 이이 초상화

 

부산진 순절도 (임진왜란 당시의 격전 장면을 동래부 화원이었던 변박 이 그린 기록화)

 

송강 정철 영정(현재는 초상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 15대 광해군(1608~1623, 15년 2개월 + 유배기간 18년) / 이혼(~66세)


- 선조의 정비가 줄곧 병석에 누워있어 소생이 없었고, 서자가 너무 많았음. 세자 책봉시기에 좌의정 정철이 음
모로 쫓겨나고, 이후 임진왜란 때 분조(임시로 조정 분리) 상황에 처해서야 광해군을 세자에 책봉 -> 전란이 가져다준 왕위
실리적 외교론. 왕권 강화를 통한 민생 안정(당쟁 종식 노력)/ 명분론에 입각한 서인들 음모에 폐위, 폭군으로 기억되는 비운의 왕 (폭군으로 기록은 인조방정에 성공한 사대주의 명분론자들이 자신들 반란을 합리화한 측면이 강함, 광해군은 일부 왕권 위협 세력을 제거하긴 했으나 민간을 위협 학대하는 정사를 편 일은 거의 없음)
왕권 위협 세력 제거(1612 김직재의 옥- 소북파 1백여명 숙청, 계축옥사- 남인 세력 완전히 제거, 신경희의 - 능창군 제거, 능창군은 인조의 동생으로 인조 반정의 직접적 원인이 됨)
- 완권 위협 세력을 모두 제거했음에도 인조 반정으로 폐위된 이유
 : 정적 제거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적을 양산하며 이들에 대한 감시 소홀 / 대북 세력이 조정 독점하면서 균형을 잃은 점 / 명군 원조에 병력을 동원한 탓으로 도성, 궁궐의 치안을 소홀히 했던 점 
- 아들, 며느리, 아내마저 죽자 광해군은 초연하고 관조적인 태도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다 죽음
허균(홍길동전-영웅소설이자 사회소설, 이상향 꿈꾸는 낙원사상, 축지법 등 도교 요소. 혁명을 꿈꾸던 사상가)
허준(동의보감-동양 의학 집대성, 조선 의학의 우수성을 청과 일본에 과시, 병을 증상 중심으로 열거한 편집력과 서술 능력의 우수성을 보임)

 

허균

 

허준

 


 

참고서적 :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지음

참고 사이트,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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