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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공부/조선 (1392~1919)

[조선시대 역사] 16대 인조/ 17대 효종/ 18대 현종 - 핵심 정리

by 궁그미~ 2022.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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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대 인조(1623~1649, 26년 3개월) / 이종(~53세)


- 1623년 3월 12일 인조반정 

 : 광해군에게 불만 품고 역모 도모하던 세력들이 무력정변 일으켜 광해군 폐위시킴
 : 주도인물은 능양군과 서인 세력(광해군의 배다른 조카, 왕으로 추대되었다 죽은 능창군의 친형: 반정의 원인) 
 : 더 본질적인 원인은 광해군과 인빈 김씨(인조의 할머니, 선조 4째 부인)의 관계였음 (선조가 인빈 김씨의 소생들을 총애하였지만 광해군을 세자로 지목, 인빈 김씨 소생들의 불만이 커짐)
대북파 숙청 / 친명 사대주의 / 이괄의 난 / 청의 침입(청과 군신 관계, 삼전도의 치욕)->경제 파탄, 민간 굶주림
병자호란(1636) :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정묘약조의 형제관계를 군신관계로 맺자 함. 이를 거부하자 12만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함
- 첫째 아들 소현세자가 8년 동안 청의 인질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 서양 문물을 가져오자 친청주의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인조가 살해했다는 추측.
이괄의 난(1624)-> 정묘호란(1627, 정묘약조 :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지킬테니 더이상 조선을 침범하지 말자는 조약) -> 병자호란(1636, 인조가 남한산성에 몸을 대피,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서 무릎 꿇고 신하의 예를 갖춘 후 한성으로 돌아옴. 이후 명과의 관계를 끊고 청나라에 복속, 이 관계는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청이 패할때까지 계속됨) 
=> 서인과 인조가 대명 사대주의(광해군을 몰아낸 명분)에 빠져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근본 원인.
상평통보(동전) 주조 시작하였으나 유통 중지됨. (숙종 대에 조선의 유일한 법화로 굳어짐)

 

남한산성 수어장대

 

삼전도비

 

상평통보 앞면

 

상평통보 뒷면(주조한 관청의 이름)

 



* 17대 효종(1649~1659, 10년) / 이호(~40세)


- 병자호란 종결 후 청은 인조의 두 아들 소현세자, 봉림대군을 볼모로 잡아감(명 멸망되면서 8년 뒤 귀국)
 : 소현세자가 새로운 문물과 사상(천주교, 서양 과학문명)을 익힌데 반해, 봉림대군은 철저한 반청주의자가 됨 
 : 귀인 조씨와 김자점 등이 소현세자 이간질, 소현세자에 대한 인조의 감정 극악화. 소현세자가 가슴앓이를 하다가 열병 후 죽음 (반청감정의 인조에 의해 독살 가능성) / 소현세자의 아들이 아닌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음(관례 어김), 이후 소현세자의 가족과 주변 세력을 모두 제거함
북벌 정책 : 친청세력(김자점) 몰아냄(청나라에 대한 원한). 국력 강성, 사회 안정의 기반 / 송시열의 북벌론 / 군비 증강을 바탕으로 두 번의 나선(러시아) 정벌 감행(1654, 1658)/ 지나친 군비 확충으로 민생 곤란 부작용
 : 북벌의 뜻은 이루지 못했으나, 효종이 확립한 군사력은 조선 사회 안정을 위한 기반이 됨

 

송시열

 

 

 



* 18대 현종(1659~1674, 15년 3개월) / 이연(~33세)


안팎으로 안정된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 / 남인과 서인의 예론 정쟁 시대
- 예송 (예송논쟁)

: 효종의 맏아들로, 효종이 죽자 인조의 계비(자의대비, 장렬왕후 조씨)의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 문제가 정쟁화 

: 서인- 인조반정으로 정권장악, 1년상 주장 vs. 남인- 인조의 중립정책으로 기용된 남인, 3년상 주장 / 결국 서인의 기년상이 채택, 남인의 기세가 크게 꺾임

: 1673년 효종 비 인선왕후가 죽자, 서인- 9개월 대공설 vs. 남인- 기년설 주장/ 현종이 기년설을 받아들여 서인 실각, 남인이 조정 장악
 : 표면적으로 왕실의 전례 문제인듯 보이지만, 내면적으로 예를 최고로 여기던 성리학의 핵심 문제이자 정권 주도권을 위한 이념 논쟁. 더 파고들면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당성을 묻는 문제 / 붕당정치를 대표하는 정치 사건
예론 정쟁에 휘말리면서도 비교적 안정된 정치북벌계획 중단훈련별대 창설대동법 확대 실시, 혼천의 재제작, 상피법(친족까지 같은부서에 있거나 송사나 시험관을 맡는 것을 금지) 제정, 통성 톤혼 금지, 하멜표류기로 조선이 유럽에 알려지는 계기 / 예론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현종 대가 그만큼 큰 변란 없이 평화로웠단 반
명성왕후 김씨(1642~1683, 41세) : 10세에 세자빈 책봉. 지능 비상, 성격 과격. 숙종의 사랑을 받던 희빈 장씨 내쫓음(희빈 장씨 집안이 남인과 밀접했기 때문)

 


 

참고서적 :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지음

참고 사이트,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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