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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공부/조선 (1392~1919)

[조선시대 역사] 22대 정조/ 23대 순조/ 24대 헌종 - 핵심 정리

by 궁그미~ 2022.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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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대 정조(1752~1800, 24년 4개월) / 이산(~48세)


- 당쟁 소용돌이 속에서 위협에 시달리며 왕위에 오르며 철저히 내면을 숨기며 살았고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음 / 25세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사도세자)에 대한 복수 감행, 파당 배격, 새로운 인물을 등용해 친위 세력 형성해 나감
- 문화정치 : 문예 부흥을 통해 새로운 정치 구현하려 함 (규장각과 실학자들) / 양반, 중인, 서얼, 평민층 모두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집약시킨 문예 부흥기(사대주의 사상이 사라지고 민족주의가 고개를 듬)
- 홍국영 : 정조의 신임을 받아 실권 장악.(신하들의 눈을 홍국영에 집중시키고 정조는 앞으로 펼칠 문화 정치를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하며 홍국영을 고의로 방치했음) 정권 독점을 위해 왕비 효의왕후 독살 계획이 발각되어 방출됨
- 규장각 : 단순한 왕실 도서관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 정치를 펼치기 위해 근위 세력을 양성하는 곳이었음. 사회 분위기를 집안, 당파가 아닌 능력, 학식 중심으로 끌고갈 수 있게 함
- 시파 중심 정치 운영 : 남인 계열. 채제공, 정약용, 이가환,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중용함 / 위기 느낀 벽파는 더 똘똘뭉쳐 1791년 신해박해를 기점으로 힘을 회복하기 시작
- 실학 : 조선 후기에 대두된 일련의 현실 개혁적 사상 체계. 정주성리학 사회 체계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현실 속에서 얻은 지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구현하려는 공통성을 지님. 새로운 시대를 염원.
- 대표적 실학자 : 연암 박지원(북학파의 거장, 열하일기) / 다산 정약용(실학의 최고봉. 수원성 설계, 거중기 제작. 마과회통 편찬, 보급. 1801년 신유사옥으로 강진으로 유배되어 엄청난 저작물을 남김.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 / 박제가(능력에 따른 관리등용제 적극 주장, 국제 무역 활성화 지론)
- 노비 면천작업 : 상업 진전, 농업 생산력 증대되며 노비의 신분이 점차 상승되어 더 이상 노비 제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여 실시됨 -> 1894년 갑오개혁이 실시되며 신분제도가 완전히 폐지되고 제도상 노비는 사라짐

 

수원 화령전 에 있는 정조 어진

 

창덕궁 후원 부용지 주변에 세워진 규장각

 

손자 박주수가 그린 연암 박지원의 초상

 

열하일기

 

열하일기 본문

 

다산 정약용 초상

 

초정 박제가 선생

 

 

 



* 23대 순조(1800~1834, 34년 5개월) / 이공(~44세)


- 19세기 초는 상품 화폐 경제 발달로 농민층의 사회 의식이 성장하는 시기, 세도정치 폐단으로 일대 사회 혼란
- 대표적 사건 : 천주교 박해(1801 신유박해 / 을해박해), 홍경래의 난
- 11세 즉위, 대왕대비인 정순왕후 수렴청정(벽파의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음, 천주교도 중에 시파나 남인들이 많다는 이유로 척사 단행_신유박해, 오가작통법을 이용해 천주교 감시 및 금지령 내리며 전국을 피바다 만듬)
- 김조순의 딸이 순조 비(순원왕후 김씨)가 되고, 안동 김씨 일문이 벽파가 물러난 자리를 채움 -> 왕조 사회 위기 -> 탐관오리 횡행하자 농민층 항거 일어남 (1811년, 홍경래의 난 : 조선왕조와 세도정권을 부정하는 체제 변혁까지 도모했던 정치적 반란) + 전염병, 수재 등 천재지변 / 순조 대의 세도정권은 반대파가 없는 독재정권으로 민생과 사회문제를 도외시하고 일문의 영달에만 관심을 쏟았음

 

영안부원군 김조순  (1765-1832) / 순조의 장인이자  순원왕후 의 아버지. 김조순을 주축으로 안동 김씨 에 의한 세도정치 가 시작.

 

 

 



* 24대 헌종(1834~1849, 14년 8개월) / 이환(~22세)


- 내우외환으로 후기 조선사회의 붕괴조짐이 드러나던 시기 : 과거제도,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 수재. 기해박해 -> 훗날 외교 분쟁으로 비화. 이양선 출몰 빈번 / 총제적 위기
- 순조가 죽자 8세에 즉위, 순조 비인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다가 15세에 친정.
조선사회를 지탱해왔던 신분 질서와 봉건제도의 붕괴 조짐이 일어남
- 기해박해(1839) : 조선에 들어와 있던 프랑스 신부와 천주교 신자가 다수 처형 / 척사윤음 반포하여 천주교 금지
- 1940년 순원왕후 수렴청정이 끝나며 안동 김씨 세력 위축, 헌종의 모후 일문인 풍양 조씨 세력 우세해짐 (조만영)
- 남응중의 모반(1836) / 민진용의 옥(1844) : 사회가 불안한 틈을 타 일어난 모반으로, 누구나 왕권을 넘볼만큼 왕조와 정취권의 권위가 실추되었음을 보여주는 예
- 1845년 김대건 신부 처형 ~ 1848년 이양선들이 빈번히 출몰하며 본격적 외세 대응기로 들어섬 (조선은 별다른 방책도 세우지 않은 채 권력의 장악에만 골몰)

 

《 헌종대왕실록 》 (국보 제151호) / 헌종의 치세를 기록한 《 헌종실록 》은 다른 실록들에 비해 내용이 매우 부실하며, 분량 또한 현저하게 적다.

 

조만영 / 익종 비 신정왕후의 아버지이자 헌종의 외할아버지

 

김대건 신부 / 한국인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자이자 순교자.

 

 


 

참고서적 :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지음

참고 사이트,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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