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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공부/조선 (1392~1919)

연산군 외모, 얼굴 '연산군은 어떻게 생겼을까?'

by 궁그미~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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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간신>

 

폭군으로 알려져있는 조선 10대 국왕 연산군. 이름 이융.

워낙 잔혹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는 만큼 연산군에 대한 드라마와 영화가 많이 제작되기도 했는데, 연산군의 어진이 전해지지 않아 연산군의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한 번쯤은 연산군의 외모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하는데요.  

영화 '왕의 남자'에서 정진영님, 드라마 '역적'에서 김지석님, 영화 '간신'에서 김강우님, 드라마 '7일의 왕비'에서 이동건님이 연기했던 연산군의 외모는 실제 어떠했을까요?

 

전해 내려오는 연산군에 대한 기록과 이야기들을 모아보았습니다.

 


 

1. 연산군은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아이돌 스타일이었다?!

 

어린이용 위인전이나 역사 만화에서는 사치스러운 폭군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간혹 비만인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실제와 거리가 멀다. 통상 왕을 떠올리면 상상하게 되는 풍채가 좋은 스타일은 아니었다는 것.

연산군의 체형은 호리호리 하였으며 성격은 선조들을 닮아서 무인 기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키는 작은 키도 중키도 아닌 전해내려온 기록에 따르면 실제 연산군은 아버지 성종을 닮아 키가 컸다고 한다.

 

드라마 '7일의 왕비'
드라마 '7일의 왕비'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의 키가 정확히 몇 척인지는 전해 내려오는 것이 없지만,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이 전해져온다. 기록에 따르면 어느 날 폐비 윤씨가 성종에게 "전하께서는 어찌 그리 키가 크십니까?" 라고 물었다고 한다. 성종은 "나보다 더 큰 사람도 있소."라며 당시 조정 대신 중 장신 축에 들었던 허종이라는 신하를 불러 비교해보았다고 한다. 실록을 포함한 기록에는 허종이 기골이 장대하다라는 표현만 있고 구체적인 키는 묘사되지 않았는데 조선 후기 인물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사고에 의하면 11척 2촌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당시 척으로 환산하면 2m가 족히 넘는 신장이다.

비교하면서 성종은 조정에서 허종 다음으로 자신이 제일 컸다고 하였는데 이를 볼 때 성종도 상당히 장신이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고 연산군도 아버지를 닮아 키가 컸다고 하므로 장신이었을 것이다.

 

 

 

 

 

2. 연산군은 아토피를 앓았다?!

연산군을 정말 고생시켰던 질병은 피부명이다. 세자 시절부터 연산군은 창진이라는 피부병을 앓았으며 치료의 기록이 자주 나온다. 치료의 효과를 봐 성종이 의원과 내관에게 말과 목면을 내려주었다.

 

또한 창병이 아닌 면창이라는 피부병을 앓았었다. 창병을 앓은 기록은 없다. 세자 시절부터 즉위하고 나서도 면창을 앓아 이때 신하들은 면창의 원인을 추위로 보고 연산군에게 추위를 피하라고 하였다. 이후 연산군의 얼굴이 붉어지고 고름이 나며 소변이 잦은 증상이 있자 어의들은 면창의 원인을 추위로 인한 양기 부족과 스트레스로 보았다. 그 이후에도 임금의 얼굴에 진물과 종기로 성할 날이 없어 면창을 치료하기 위해 의관들이 명나라에 가서 웅황해독산과 선응고라는 귀한 치료제들을 구해왔다. 우선 일단 함부로 임금의 용안에 먼저 사용할 수 없기에 연산군과 같은 피부병 증상이 있는 노비에게 시험했다. 이후에 치료제들을 사용한 노비의 얼굴에 있는 종기가 서서히 완화되는 효과를 보이자 의관들은 다시 명나라에 가 치료제들을 많이 구해오고 제조법을 물어온 다음 임금에게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찬바람을 피해 몸을 최대한 따뜻하게 하였고 양기에 좋은 음식과 약재로 기력을 보충하여 원기와 양기를 회복하였으며 소변이 잦는 증상도 멈추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면창 증상에 대한 언급이 딱 한번 있었으나 재위 중반 넘어가면서부터 재위 말기까지 증상이 어떠하다고 연산군 본인과 신하들이 피부질환에 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기에 치료하여 완치된 것으로 보인다.사관이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했으나 뒤늦게 치료의 효과가 나타났거나 서서히 자연스럽게 가라앉은 것으로 추측. 연산군의 얼굴에 종기(부스럼)이 떠나지 않았다는 내용은 세자 때의 기록이며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병으로 인한 흉터나 자국이 생겼을 거라는 추측이 있지만 이에 대한 얘기는 실록이나 야사에 일체 언급되지 않았다.

 

 

 

 

 

3. 피부가 하얗고 충혈기가 있었다?!

이덕형이 기록한 수필집 죽창한화를 보면 연산군 피부병은 완전히 호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임진왜란이 터져 전라도에 머문 이덕형이 97세인 한 노인을 만나 그 노인한테서 연산군 외모 묘사를 듣고 자세하게 서술한 기록이다. (죽천 이덕형의 수필집 '죽창한화') 어린시절 노인은 당시 한양에서 재위 끝무렵 연산군의 얼굴을 직접 봤으며 그 해 가을에 반정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노인은 연산군이 키가 컸으며 빛은 희고 수염이 적으며 눈에는 붉은 기운이 있었다고만 묘사하였다. 이를 볼 때 연산군의 피부병 치료가 제대로 안됐다면 분명 노인은 빛은 희나 용안이 얽었다 또는 종기와 흉터(자국)이 있었다고 언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얘기는 일체 언급되지 않았기에 연산군의 피부병은 제대로 치료되었으며 만성적인 피부병도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산군의 외모가 이러했을거라 많이 언급되는 이종석님.

 

즉위 초 연산군은 잔병치레가 잦았다 재위 중반~ 후반에 들어서는 눈병 외에는 다른 병상은 없었고 사소하고 가벼운 증상들만 있었는데 금방 호전되었으며 재위 후반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스트레스도 하나의 원인으로 보았다고 앞서 언급했었는데 그동안 연산군은 대간들로 인한 스트레스 영향으로 금방 완쾌되지 않았고 완쾌 됐어도 다시 또 재발하는 등 이러한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나 연산군이 신하들을 억누르고 나서부터는 신하들의 족쇄로부터 자유를 찾았는지 몰라도 확실히 초기 때와 달리 활기차고 연산군의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운평과 흥청들의 외모를 항상 중요시여겨 부스럼같은 피부질환이 있으면 곧 치료하게 하였다.

 

영화 '간신'

 

영화 [간신]에 나오는 연산군은 실제 외모 고증과 상관 없이 관자놀이에 붉은 반점을 그려넣었는데 이에 대해 배우 김강우는 인터뷰에서 연민을 넣고 이해를 시키고 싶어 붉은 반점을 그려넣었다고 하였다. 어머니로 인해 미쳐가는게 아닌 태생적으로 결핍이 많은 사람으로 설정하였으며 결핍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기에는 시간이 없으니 외적으로 이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산군 얼굴에 붉은 반점을 그려넣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및 참조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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