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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공부/조선 (1392~1919)

[조선시대 역사] 7대 세조/ 8대 예종/ 9대 성종 - 핵심 정리

by 궁그미~ 202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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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대 세조(재위기간 : 1455~1468, 13년 3개월) / 이유(~53세)

세조 어진 초본

 

- 단종이 즉위하자, 정국의 구도가 수양대군파고명대신파(안평대군파)로 나뉨. (왕족의 힘 분산)
- 고명대신들의 경계를 늦추고 거사 계획을 세우기 위해 단종 즉위를 인정하는 고명을 보낸다며 명나라 행을 하는 엉뚱한 행동을 하고, 명에서 돌아와 무력으로 조정대신들을 죽이고 정권 장악 : 계유정난(1453, 세조 39세)
정인지, 권람, 한명회, 양정 등 자신을 포함한 43명을 정난공신에 책봉.
사육신(성삼문, 하위지, 이개, 박팽년, 유성원, 유응부 / 왕을 위해 충절을 지킴) &
  생육신(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 세조 밑에서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절의 지킴)
- 어릴때부터 영특, 명민, 학문 뛰어나고 무예에 능함, 대담한 성격
- 의정부서사제 폐지, 육조직계제 단행 / 집현전 폐지 / 승정원(비서실) 기능 강화
호패법 복원(백성 동향 파악, 왕권 강화) / 동국통감(전대 역사 재조명), 국조보감(통치 법칙) 편수 / 경국대전 찬술 시작 / 호전(호구 파악, 호의 규모 규제) 복구, 형전(형량 규정) 개편 완성
직전제 실시 / 중앙 문신 위주의 정책(->이시애의 난) / 잠서(누에 농업)해석, 오륜록 찬수(윤리 기강)
=> 중앙집권제 확립, 민생 안정책, 유화적 외교 활동, 법전 편찬, 문화 사업으로 사회 일신시켰으나, 문치가 아닌 강권으로 정치를 운영하고 비서실 중심의 측근 정치, 측근 인사로 일관하여 병폐가 심각했음
- 1468년 원상제 도입(왕이 지명한 삼중신이 왕자와 함께 모든 국정을 상의해 결정하는 대리서무제)
- 즉위 내내 단종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림
불교 융성 (패륜적 행동으로 유교적 입지가 약한 현실적 선택이자 성리학자들을 견제하는 수단)
권람(한명회와 각별하여 수양에게 한명회를 소개한 사람) / 한명회(이시애의 난으로 여러움 겪음, 노년에 압구정, 엄청난 부) / 신숙주(세조의 오른팔격, 집현전 출신 벗들에게는 변절자로 낙인, 국조보감 편찬, 국조오례의 교정 간행 등 저술 업적과 작품을 남김)

 

한명회가 지은 정자, 압구정 (18세기, 겸재 정선 작)

 

신숙주

 


 

* 8대 예종(재위기간 : 1468~1469, 1년 3개월) / 이황(~19세, 요절)

- 세조의 아들들은 오래 살지 못함(첫째 의경세자(덕종)가 세자 책봉된지 2년 뒤 시름시름 앓다 죽음)
- 예종도 건강이 좋지 않아,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와 원상 제도(세조가 마련한 신하들에 의한 섭정. 한명회, 신숙주, 구치관)의 지원으로 왕권 행사 / 왕권은 미약, 정희왕후(세조 비) 힘은 강력
남이, 강순의 역모 사건(1468) 한명회, 신숙주 등의 세력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등장한 신세력을 제거
 :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남이가 세조의 총애를 받자, 세조가 죽자 견제를 받음. 예종도 세조가 총애하던 남이를 좋아하지 않던 차, 유자광이 남이를 역모로 몰아 측근 30여명과 함께 제거함. 

 

 

 



* 9대 성종(1469~1494, 25년 2개월) / 이혈(~37세)

- 예종이 죽던 날, 세조 비 윤씨가 장자인 의경세자(덕종)의 첫째(월산군- 정치적 희생자)가 아닌 둘째아들(자을산군)을 왕위에 앉힘 (정치적 결탁- 한명회:자을산군의 장인)
13세 왕위에 올라, 7년간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왕권을 다짐. 
- 천품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었음. 사예와 서화에도 능함. 치세에 능했음. 유교사상 정착. 왕도정치 => 조선 개국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 태평성대 (모든 기초를 완성시켰다는 뜻의 성종이라는 묘호를 얻음)
유교 문화 강화책, 민생 안정책(한명회, 신숙주 등이 주도) : 호패법 폐지(민간에 대한 관의 감시 줄임) / 1485년 경국대전(조선 통치 기본 법전) 완성, 법치주의의 자주성 이룸 / 숭유억불 강화 / 고리대업을 하던 장리소의 숫자를 줄임 / 뽕나무 재배로 의류업 발달
- 1476년 수렴청정이 끝난 후 상황 급변 : 세력균형 정책_ 원상제도 폐지, 권신 견제, 신진세력 진로 열어줌
- 중앙 정계에 사림 등장 : 김종직(영남 성리학파의 거두, 고려말 정몽주 학풍을 이음, 정의를 숭상) / 유향소(지방자치기구, 사림의 정치적 기반) 부활
성리학 심취, 도학 정치 : 편찬 사업 융성(동국여지승람_관찬지리지, 동문선_삼국시대~조선초 문학자료 집대성, 악학궤범_조선 의궤와 악보 정리, 동국통감_성종과 사림의 역사의식이 잘 반영된 신라초~고려말 역사서)
- 공법 : 객관적 기준과 타당성을 확보한 조세법(전분육등법: 토지를 비옥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어 세금을 냄)
- 변방 안정 : 여진족 정벌 등 야인 세력 소탕
- 태평성대는 사회 한쪽에 퇴폐 풍조를 낳음(성종 후기 유흥 풍조 만연, 폐비 윤씨 사건->갑자사화, 어우동

 

조선시대 호패

 

김종직

 

동국여지승람

 

악학궤범  / 방향(方響)

 

동국통감

 


 

참고서적 :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지음

참고 사이트,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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