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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공부/조선 (1392~1919)

[조선시대 역사] 10대 연산군/ 11대 중종/ 12대 인종/ 13대 명종 - 핵심 정리

by 궁그미~ 202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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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연산군(1494~1506, 11년 10개월) / 이융(~30세)


폐비윤씨의 시어머니인 인수대비(덕종 비)가 윤씨의 폐비를 강행(한명회 등 훈구 세력, 김종직 등 사림세력 가세)
- 세자 융은 어머니가 정현왕후(중종 모)인 줄 알고 자람(성종이 폐비윤씨 사건을 일체 거론 못하게 함)
인수대비, 정현왕후 모두 정현왕후의 아들인 진성대군(중종)에게는 대조적 태도융에게 혹독, 가슴에 응어리.
- 진성대군이 태어나지 않은 1483년 성종이 융을 세자로 책봉 (왕자가 융 하나뿐), 19세에 왕 등극
- 독재 군주 군림, 광포한 성격, 희대의 폭군 -> 박원종의 반란으로 폐출됨
무오사화(1498): 연산군에게 학문을 강요하고 사사건건 간언을 하던 사림 세력(김종직) 축출/ 왕권 강화
갑자사화(1504): 임사홍이 폐비윤씨 사건을 연산군에게 밀고, 대살생극 벌어짐(겉보기에 연산군의 복수극으로 보이지만, 연산군과 임사홍 일파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벌인 고의적 참살극)
- 폭정이 이어지자 1506년 박원종 등이 군사 일으켜 연산군 폐하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옹립, 연산군 강화도 유배 
- 셀 수 없이 많은 후궁(장녹수)
(+) 동정론에 대한 의견: 왕권이 강화된다는 것은 왕이 백성과 신하를 묶어주는 구심체 역할을 하는 것이지, 군림한다는 의미가 아니기에 연산군의 폭정은 왕권 강화가 아닌 왕권을 볼모로 한 독재의 강권이라 보아야 할 것임

 



* 11대 중종(1506~1544, 38년 3개월) / 이역(~56세)


- 성희안, 박원종 중심의 반정 거사로 연산군 독재정치 종식, 훈구세력에게 정치 주도권 돌아감(성종 이전 형태)
훈신, 척신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 / 반정 이후 개혁 분위기 지속(사림 위주- 조광조)
유교정치 : 도학 사상에 근거한 철인 군주정치 표방 (여씨향약 실시 : 유교 사상 기반의 민간 자치 규율)
기묘사화(1519) : 조광조 일파의 지나친 도학적 언행에 염증 느낀 중종이 신진 사림 세력을 숙청
삼포왜란, 임신조약 : 왜인들의 잦은 변란(+추자도 왜변, 동래염장 왜변, 사량진 왜변)
- 왕권 호위 강화를 위해 정로위 설치, 왜구에 대응하기 위해 비변사 설치
- 사회, 문화, 경제 진흥 정책들을 펼쳤으나, 별다른 성과를 못 냄. 인재 활용의 미숙함, 정치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
 (조광조 급진 개혁파의 무리한 혁신 시도, 균형정치 실패_정치체계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음을 반증)
서경덕: 실험적, 과학적 대학자. 생사일여 주장. 조선 기철학. 황진이,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이라 불림

 

조광조

 



* 12대 인종(1544~1545, 9개월) / 이호(~30세)


조선 왕들 중 가장 짧은 치세 / 효성, 너그러운 성품, 금욕적 생활 등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 성군 
 -> 이러한 성품은 계모 문정왕후(사악, 표독한 성격)를 방치하는 요소로 작용, 본인의 생을 단축시킨 결과
문정왕후로부터 몇차례 죽음의 위험을 겪어냄 (문정왕후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자식을 두지 않았다고 전해짐, 인종이 앓아누워 죽게 된 것도 문정왕후가 독이 든 떡을 내놓은 것이 원인이라 전해짐)

 

 

 



* 13대 명종(1545~1567, 22년) / 이환(~33세)


- 중종의 두번째 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아들. 총명. 모후의 극악스러움에 눌려 평생 눈물로 왕위를 지킴
- 12세 즉위, 8년간 문정왕후의 수렴청정 받음. (문정왕후 친동생 윤원형 일파가 조정의 대세를 잡음)
을사사화(1545) : 윤원형 일가가 윤임 세력(장경왕후 오빠) 제거를 위해 사림 세력들을 숙청, 유배시킨 사건
- 양재역 벽서 사건 : 을사사화로 조정 장악한 윤원형이 미처 제거 못한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
 ->외척 전횡 시대 도래. 명종이 이들의 횡포에 시달림
정난정 : 윤원형의 애첩. 노비 출신. 정실부인을 독살. 전매, 모리 행위로 부를 축적
- 명종이 윤원형을 견제하고자 중용한 인물이 이량이었으나, 이량 윤원형 심통원 : 조선의 3흉 이라 불리게 됨
문정왕후는 독실한 불교 신봉자로, 봉은사 승려 보우의 조언에 따라 선종, 교종 모두 부활시킴
- 흉년이 지속되며 민심은 병들고, 백정 출신의 임꺽정 무리 활동 + 을묘왜변(1555)
-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조선은 급속도로 평화를 되찾음. 국정에 시달린 명종은 2년 뒤 죽음.
이언적 : 주리철학의 선구자. 도학적 수양론과 실천 강조. 이황에게 계승되는 영남학파 성리설의 기초가 됨
이황 : 본격적인 학구 활동 50세 이후 시작만학을 통해 조선 성리학의 최고봉에 이름. 동양 유학의 한 산맥.

 

이황 상

 


 

참고서적 :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지음

참고 사이트,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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